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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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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준열사 기념관 위치 및 운영시간

    1) 지역: 네덜란드 헤이그

    2) 주소: Wagenstraat 124, 2512BA, The hague The Netherlands

    3) 운영시간: 월요일~금요일 10:30~17:00

    4) 관람가격: 5EUR

    5) 특이사항: 헤이그 특사 3인(이준, 이상설, 이위종) 머물던 숙서 건물에 만들어진 기념관

    6) 꼬꼬무 방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14화. 이준열사 기념관 원장 이기항 송창주 부부 이야기

     

     

    출처_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14화

     

    2. 을사오적에 의해 이뤄진 "을사늑약"

    출처_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14화

     

    1) 을사 늑약

    - 을사늑약은 1905년 11월 17일에 체결된 늑약으로,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사건이다. 이 늑약의 경우 일본의 압력에 의해 체결 되었으며, 당시 한국의 고위 관료들이 협력하며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고위 관료들을 을사오적이라고 합니다.

     

    - 이 늑약의 주요 내용의 첫번째는 한국은 외교를 일본 정부에게 맡기며,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일본이 한국의 외교 업무를 대신 처리하며, 한국의 외교적 결정에 대해 일본의 승인이 필요함을 내용에 담고 있습니다.

     

    -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한국을 통치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자 을사늑약을 강압적으로 체결 하였고, 이 결과 여러 독립 운동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 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은, 1907년 4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헤이그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 3인을 파견하게 됩니다. 

     

    2) 을사 늑약을 주도한, 을사오적 명단

    (1) 이완용 (1858-1926)

    - 출신: 한양(현재 서울)

    - 직위: 고종때 외무대신, 이후 총리 대신

    - 경력: 고종의 측근으로 정치에 입문. 1904년 외무 대신으로 임명. 1905년 을사 조약 체결을 주도하며, 이후 총리대신에 오른 인물.

    - 행적: 늑약 체결 이후에도 일본 정부의 통치 아래 적극 협조. 일본의 정책을 지원한 인물. 친일 활동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대한제국의 경제적 정치적 잠식을 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됨.

     

    (2) 이근택 (1865-1945)

    - 출신: 경상북도

    - 직위: 외무대신

    - 경력: 외무대신으로서 외교 업무에 종사.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참여 인물 중 하나.

    - 행적: 외교권 박탈을 정당화 하며, 일본에게 유리한 외교 정책 추진.

     

    (3) 권중현 (1858-1923)

    - 출신: 경상북도

    - 직위: 내무대신

    - 경력: 내무부 장관으로써 일본의 통치 정책 지원. 일본의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한 친일 인물.

     

    (4) 박제순 (1855-1926)

    - 출신: 경기도

    - 직위: 재무대신

    - 경력: 재무대신으로서 재정 및 경제 정책을 담당하며, 일제 수탈에 적극 협조한 인물

    - 행적: 일본의 경제적 요구에 협조하며, 대한제국의 재정 정책을 일본 통제 하에 두는데 기여한 인물. 친일적이 행적으로 인하여, 경제적 잠식을 가속화 시킴.

     

    (5) 이병직 (1856-1922)

    - 출신: 전라남도

    - 직위: 농상공부 장관

    - 경력: 농상공부 장관으로써 농업 및 산업 정책에 관여. 농업 수탈을 가속화 시킨 인물

    - 행적: 일본의 농업 및 산업 수탈 정책에 적극 협조 함으로써, 대한제국의 자주적인 경제발전을 저해한 인물.

     

    3) 헤이그에 파견된 헤이그 특사

    - 헤이그 특사는 1907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일본의 강압적인 외교 정책에 저항하기 위해, 1907년 4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견한 3인의 특사를 말함.

    (1) 헤이그 특사 파견 배경

    -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이후, 고종은 국제 사회에 부당한 늑약을 알리기 위해 특사를 파견함.

    - 특사의 주된 목적은 한국의 독립과 외교권 회복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국제 사회가 이를 묵인함.

     

    (2) 헤이크 특사 묵인 이유

    출처_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14화

     

     

    - 강대국들이 일본과의 조약 및 밀약, 동맹을 통해, 일본의 부당한 조선 침탈에 대해 암묵적 눈을 감아 줬기 때문.

    - 그렇기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 입장하지 못하고, 문전박대 당함. 회의 문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제지 당하게 됨.

     

     

    (3) 헤이그 특사 명단

    이준/ 이상설/ 이위종_출처 SBS 꼬꼬무

     

    - 이준: 헤이그 특사 파견 당시 48세. 직업은 검사.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호법신" 이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

     

    - 이상설: 1907년 5월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그에서 이준과 만난 인물. 고종 황제가 임명한 또 다른 특사 중 한명. 그당시 37세. 조선의 마지막 과거 합격자 이자, 성균과 대사성(교장)으로써 "산술신서"라는 신학문 집필한 조선의 지식인. 의정부 참찬까지 오른 인물. 을사늑약 이후에 고종에게 "을사오적의 목을 베어 달라" 고 상소를 올린 인물. 을사늑약 파기 운동을 주도함.

     

    - 이위종: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준, 이상설과 만난 인물. 고종 황제가 임명한 세번째 특사. 20대초반 나이. 영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7개국어 능통자. 언어 천재로써 고종황제의 뜻을 전세계의 언어로 전달하고자 노력한 인물.

     

     

     

    * 대한민국의 주권을 되찾고자 노력한 인물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현재에도 이들의 노력을 후대에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숨은 조력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뜻 깊은 시간 이었습니다. SBS꼬꼬무 ♥ 사랑하고   응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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